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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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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동훈 ( 2007-01-30 23:44:51 , Hit : 7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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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남자의 사랑 이야기


제가 있는 곳은 대도시에서 조금 떨어진 변두리 마을입니다. 저는 이곳에서 조그만 약국을 하나 운영하면서 살고 있지요. 어느덧 마흔을 바라보는 30대 후반의 나이에 애인하나 없는 한심한 노총각이죠. 하루하루를 따분하게 보내던 어느 날 그녀가 나타났어요. 그녀는 따뜻한 봄날에 꽃봉오리를 터트린 노란 개나리 같은 원피스를 팔랑거리며 약국 유리문을 열고 들어왔죠. 귀여운 외모와는 달리 얼굴엔 알 수 없는 슬픔으로 가득했죠. 그녀는 제게서 일주일 분량의 수면제를 사서 갔어요. 자주 올 수 없다며 한 달치를 달라고 했지만 한 사람에게 팔 수 있는 약의 분량이 정해져 있기에 그럴 수 없었죠.

그녀는 정확히 일주일 뒤에 다시 약국에 왔어요. 그리고 일주일 분량의 수면제를 사서 유리문 밖으로 사라졌죠. 그녀가 오는 날이면 아침부터 부산스러워져요. 아직 몇 마디 대화도 나누지 못했지만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사랑이 시작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죠. 머리엔 젤도 바르고 옷차림도 최대한 깔끔하게 보이려 노력했죠. 하지만, 그녀는 나의 이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수면제만을 구입해서 돌아가 버리곤 했죠.

어쩌면 그녀는 수면제에 중독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그녀 몰래 약을 만들었어요. 국내에선 구하기 어려운 수면제 약통을 구했고 그녀를 위한 영양제를 담았죠. 작은 약통에 7개씩 캡슐 포장된 영양제는 누가 보더라도 수면제와 똑같아 보였죠. 그리고 그녀가 약을 사러 오는 날이 되었어요. 오늘도 그녀는 일주일 분량의 수면제를 달라고 하네요. 그녀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짐짓 큰 소리로 새로운 수면제 이야기를 했어요. 효과만점에 가격은 더 싸다고 열심히 설명했죠. 그녀는 아무런 의심 없이 제가 만든 약을 구입했어요. 그녀가 약국 문을 나선 후 저는 식은땀을 흘리며 주저앉았죠. 누군가를 속인다는 것이 이렇게 어렵다는 것을 몰랐거든요. 그 누군가가 제가 사랑하고 있는 그녀였기에 더욱 긴장할 수밖에 없었죠.

그 이후로도 그녀는 제가 만든 수면제를 효과가 좋다며 계속 사 갔어요. 어느 날 새벽 약국 앞으로 구급차 한 대가 요란한 싸이랜을 울리며 윗동네로 올라갔죠. 사실 이곳 변두리 마을에선 구급차를 보기 어렵지 않아요. 한 달이면 서너 번은 이곳 변두리 마을의 누군가를 위해 출동하곤 하니까요. 하지만, 이번엔 느낌이 좋지 않았어요. 마치 나와 가까운 사람이 구급차에 타고 있을 것만 같았거든요. 평소보다 한 시간쯤 일찍 약국 문을 열었어요. 새벽 찬 공기가 폐 깊숙이 들어왔다가 하얀 입김으로 사라지네요.

혼자 사는 총각이 그러하듯이 아침 식사는 빵 몇 조각과 우유가 전부죠. 지난밤에 먹다 남긴 맥주 캔을 모두 마셔 버리고 청소를 시작해요. 여느 때와 다른 점은 별로 없었죠. 정오가 지나서 오늘은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고 있을 때 약국 유리문을 밀고 들어오는 분이 계셨죠. 맞은 편 시장에서 채소를 파시는 아주머니셨어요. 요리를 하지 않기에 그분에게 채소를 살 일이 없었지만 늘 유리문 너머로 볼 수 있었기에 친근하게 느껴졌죠.

그분이 약을 사려고 오신 건 아니라는 것을 느낌으로 알 수가 있었죠. 한 손엔 분명 이곳 약국의 봉투가 들려 있었지만 제가 그분에게 약을 팔았던 기억은 없어요. 다른 손엔 사진을 쥐고 있었어요. 그리고 그분의 눈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고요. 그분에게 무언가 큰일이 생겼다는 건 알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가 없었죠. 손에 들고 계시던 사진을 말없이 제게 보여 주시더군요. 전 심장이 멎는 듯했어요. 사진 속엔 그녀가 있었어요. 지금보다 조금 어렸을 때 찍은 듯싶은 사진 속의 그녀는 너무나도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보고 있었죠.

그분의 다른 손에 들려진 약국 봉투가 눈에 들어왔어요. 그리고 새벽의 구급차 소리가 내 귀청을 뚫을 듯이 메아리쳤죠. 내가 사랑하는 그녀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이 틀림없었죠. 그녀의 어머니는 내 눈을 바라보시며 자초지종을 이야기해 주셨어요. 그녀는 극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었데요. 그래서 하루라도 수면제를 먹지 않으면 잠을 잘 수 없었다고 하네요.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수면제를 모아 두었다가 한 번에 삼키고 쓰러졌데요. 그게 바로 오늘 새벽이었고요. 그녀는 응급실로 실려 갔고 의사 선생님이 진찰을 했는데 놀랍게도 몸에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거에요. 그도 그럴 것이 그녀가 삼킨 것은 수면제가 아니었으니까요. 한바탕 소란을 피운 그녀는 병실로 옮겨져 휴식을 취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너무나 다행이죠. 잠시 외출 중이라는 안내판을 유리문에 걸어 두고 그녀가 입원한 병원에를 찾아갔어요. 너무나도 예쁜 그녀는 열린 창문으로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었어요. 제가 곁에 다가가도 모르더군요. 어떻게 말을 건넬까 고심했죠. 꽃도 한 송이 가져 오지 못한 나의 어리석음을 원망하며 주머니에 손을 넣었더니 작은 약통이 잡히네요. 느낌만으로도 그것이 그녀를 위해 준비한 약이라는 걸 알 수 있었죠. 게다가 오늘은 그녀가 수면제를 사러 오는 날이었거든요.

하얀 약통을 꺼내 그녀의 앞에 내밀었어요. 그녀는 잠깐 놀라는 듯하더니 약통을 보고는 입가에 웃음을 짓네요. 그녀가 웃는 모습을 보니 날아갈 것만 같네요. 저도 웃었죠. 그녀보다 더 크게…. 그녀도 제게 질세라 더 크게 웃네요. 창밖으로 차가운 겨울바람이 불었지만 우리의 웃음은 멈추지 않았어요. 그렇게 우리의 따뜻한 겨울은 시작되었답니다.


제공 : 연짱 (네이버)



자두맛 (2007-02-26 01:25:20)  
>_< 글 잘 읽었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존댓말이 아주 귀여운아저씨네요~ 내용을 보면 멋질것 같은데 나이대를 생각하니 왠지 조금 배나온, 키가작은;;아담한 아.저.씨만 떠올라요ㅠㅠ 하하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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